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문단 편집) == 후손 ==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한니발은 마르켈루스의 유해를 화장한 뒤 재를 담아서 고인의 아들에게 보내게 했다. 아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기원전 196년 집정관)|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는 아버지의 유골함을 받은 뒤 장례식 연설을 발표했는데, [[루키우스 코엘리우스 안티파테르]]의 역사서에 그 내용이 실렸고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가 이를 인용했다. 기원전 205년, 아들 마르켈루스는 아버지 마르켈루스가 집정관을 처음 맡았던 기원전 222년에 한 서약을 이행하기 위해 아버지가 세운 명예와 미덕의 사원(Aedes Honoris et Virtutis)의 봉헌식을 개최했다. 그 후 그는 기원전 196년 집정관을 역임했다. 손자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기원전 166년 집정관)|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는 3차례(기원전 166년, 기원전 155년, 기원전 152년) 집정관을 역임했으며, 명예와 미덕의 사원에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조각상을 세우고 "9번 집정관을 역임한 3명의 마르켈루스(tres Marcelli novies consules)"라고 적힌 비문을 건립했다. 이후 마르켈루스의 후손들은 대대로 고위 행정관 직임을 역임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겼으며, 시칠리아 전체의 후원자로 간주되었다. 이 가문의 마지막 대표자는 [[소 옥타비아]]의 아들이며 [[아우구스투스]]의 조카이자 후계자였던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아우구스투스의 조카)|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